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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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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쯤은 술을 마시고 부리는 주사가 있다. 파인애플 맛 탄산 쥬스 같았던 돌아가시기 직전의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할아버지는 2006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벌써 3년이나 된 일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파주집 거실에 걸려있는 도포입은 할아버지들의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 속에 이제 살아계신 분은 고작 두어분이다. 할아버지는 사진 속의 사람들의 세계로 이사하신 것 같았다.


당시 노느라 병환 중인 할아버지를 자주 뵙지도 못했는데, 돌아가시기 2주 전에 휴가를 내서 잠시 들렀던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황달에 걸려 형광 노란색이 된 모습 그대로 눈을 감으셨는데, 입관 때 눈을 감은 할아버지의 얼굴에 눈꺼풀의 떨림이라든가, 솜털 조차 미동하지 않고 모든 게 얼어버린 모습을 보니 와락 슬픔이 몰려왔다. '숨을 거둔다'는 표현의 의미는 사람에게서 파르르한 떨림이 거두어진다는 것이었다. 

18살에 가마타고 말타고 시집 장가 들어,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함께 겪으며 평생을 보낸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입관식에서 이마를 맞대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술 먹는 거 구박하며 속이 다 문드러질거다고 욕했드만, 진짜 속이 썩어 문드러져 죽을 줄 어찌 알았누라고 우시던 장면이 생각이 난다. 죽음이라는 것은 일대기 속에서 애정과 증오의 모든 거리 속에서 죽은 자를 부여잡게 되는 사건이다.

장례식 동안 할아버지를 저승으로 보내는 여러번의 제를 올린다. 아침, 점심, 저녁에 올리는 제마다 죽은 이에게는 저승길의 어디쯤 가야 하는지, 산 사람에게는 그가 어드메쯤에 있는지 알려주는 말을 한다. 그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의 여행길을 상상하며 울고 또 울었다.

화요일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삼우제까지 끝내고 진이 빠진 식구들이 일요일 하루를 쉬고 월요일에 모두 일상으로 복귀했다.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다고 했지만, 살아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그 육체의 사라짐을 실감하기 위해서, 또 익숙해지기 위해서,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무척 헤멨다. 즐겁지만 생각하면 속이 아련해지는 좋은 추억들이 있지만, 그것은 모두 사라진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다시는 살아서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수 나는 꿈을 꿨다. 하얀 모시 옷을 위아래 시원하게 갖춰 입은 할아버지는 뽀얀 얼굴로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이름 모를 할아버지들과 낮술을 거하게 걸치고 계셨다. 나는 여기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으니 내 걱정은 말아라, 할애비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지금 내 오랜 사람들과 만나서 더없이 즐겁다.

나는 울다가 시원하게 잠에서 깼다. 죽은 사람들이 가는 자리가 있다면, 산사람으로서 나는 그가 그 저승길을 제대로 걸어가셨을지 늘 염려가 되었다. 그리고 저승이란 세계가 있다면 할아버진 어떤 세계 속에서 살고 계실지, 어떤 인연들을 만나셨을지 걱정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늘 산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려 들지만, 산 사람들도 종종 죽은 사람들의 삶을 걱정한다. 그리고 더러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세계가 서로 침투하면서 그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현생의 인연이 소멸되는 것을 견딜 수 없다. 시인 고정희의 무덤가에서 소녀들이 흰 나비를 찾았던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뜬 것에 위로를 받은 것도 죽은 사람의 자리를 확인하고 싶었던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무현이 살아있을 때 지지했었냐?"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죽음을 애도할 자격을 논하는 말들을 듣는다. 생전에 그를 욕하던 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죽음을 슬퍼하냐는 말 같은 것은 그만 듣고 싶다. 노빠였던, 아니였든, 정치인 노무현 지지자였든, 대통령 노무현 지지자였든, 그의 정치적 행보에 따라, 그의 자리에 따라 저마다와 가지고 있는 입장과 거리가 달랐다. 지금은 그 지지와 비판의 실 모두를 부여잡고 그의 죽음과 나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 사이에서 흐느끼고 있다. 그의 죽음을 사유화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나의 일부가 함께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나의 한 조각, 그 움푹 패인 자리를 보며 29일 시청 광장에서 "살아야 한다, 정치해야 한다, 이민가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 패인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정치가 썩었다고 등을 돌리지 마라"던 그의 말이 생각이 난다. 

“대통령 선거 결과 대한민국은 하향평준화되었다. 월드컵 4강은 아무나 우승할 수 있다,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키웠다. 자기 수준의 대통령을 뽑음으로써 자기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자위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선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일보, 2003년 6월20일치 칼럼) 

20대를 지나며 몇 번의 촛불을 경험했다. 20대의 촛불은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한계를 단계적으로 보여준 경험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고 느끼지만 '어떻게'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대안이 그렇게 빠르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지금은 좀 울고 욕하며 있어도 되지 않을까. 세상에 넘쳐나는 말 중에 '20대', '청춘'의 '뜨거움'은 자기계발서의 악세사리로 전락했다. '뜨거움'이나 '열정'같은 말은 혼자서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데 자신을 채찍질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과 공유하는 세상을 조직하는데 사용해야 할 말이다.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서 뜨거울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이 없다면 그렇게 혼자 재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 촛불이 언제까지 가겠냐고, 또 금새 식지 않겠냐고 하지만, 나는 2008년의 촛불이 식은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때도 지금도 나는 나이브하다. 대안을 디자인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고 변명한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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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사회와 정치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서경식이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에서 언급한 루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희망을 보고 걷는 것이 아니다.(서경식)

언젠가 상대방이 "Do you see any hope?"라고 물었어요. 저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hope'라는 말로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무엇을 묻고 있는지, 'hope'의 말의 뜻이 무엇인지..... (중략)  그런데 희망이 'hope'일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희망의 희希자가 희박하다는 '희'자이지요. 'little',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절망切望은 전혀 없다는 것이죠. 끊어버렸다는 것이 절망이고, 소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 희망이에요. '우리의 언어에는 희망이 거의 없는 것하고 절대 없는 것, 이 두가지밖에 없다.' 쓸데없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는 글쟁이니까 항상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희망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지요. '희망이란 건, 'hope'라는 건 'I see little hope.' 거의 안 보인다. 그래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식의 표현이 루쉰에 많이 나옵니다. (163)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본래부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말이지, 길이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다.

'고향' 마지막 부분이지요? 이 말은 제가 아주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는 말인데요. 이 얘기가 결코 희망적인 것이 아니에요. 그것이 중요해요. 일본에 가카무라 고타로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의 시 '도정'가운데 "내 앞에 길은 없다. 길은 내 뒤에 생겨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시를 일본 중학교에서 가르칩니다. 루쉰의 그것하고 비슷하다고 해서요. 그런데 전혀 달라요. 루쉰 얘기는 '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면 된다.'는 어떤 희망적인 이야기가 다카무라 고타로식이고, 루쉰의 것은 '희망, 소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없다. 그래도 걸어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에요. 이것이 '희망'이라는 겁니다. 다카무라의 시하고 루쉰의 시가 아주 비슷한 듯 보이지만 왜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를까요? (174)

수업을 듣는 중에 어느 선생님이 "지난 번에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하루 종일 엉엉 울었어."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해가 간다. 나도 가끔 할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다. 앞으로는 목숨을 던져서라도 자신의 책임을 지고 싶어했던, 신념을 전달하고 싶었던 대통령이자 정치인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을 속상한 마음으로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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